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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
  • 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
  • 저자 : 한대웅 출판사 : 페이퍼로드 제작일 : 2021.05.14
  • 소속도서관: 교육청  지원 기기: 스마트폰 실행가능  포맷 : EPUB 파일
  • 카테고리 : 역사/기행>역사일반 유통사 : 교보문고
  • 추천수: 0  대출 : 0/5 반납예정일 : 2022.12.17 예약 : 0
  • 교보문고 전자책 스마트폰 이용안내


군 입대 전까지 아버지 당신이 아는 글자는
이름 석 자와 집 주소뿐이었다

『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는 보통 아들 한대웅이 쓴 보통 아버지, 하지만 위대한 삶의 여정을 걸었던 한일순의 이야기다. 저자는 아버지의 인생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긁어내는 과정이었다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한 사람의 팔십 평생을 돌아보는 과정은 뭐 하나 쉽게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더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과 사건도 반드시 짚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야유회에 가지 않았던 것부터 삼 남매가 단칸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했던 일까지. 학교와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인생을 마음대로 재단하려 했다. “요즘도 무학력인 사람이 있어?”, “소처럼 일은 잘하지.”처럼 사람들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 상처는 더 깊이 패었다. 더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다섯 식구가 모로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으로부터, 마음이 유약한 어머니로부터, 먹고사는 일에만 혈안인 나의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의 갈등은 성인이 되고 더 깊어졌다. 저자는 대학에 들어가 전경의 최루탄에 맞서 짱돌을 던졌던 이른바 ‘86세대’이다. 1997년에는 민주화와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민주화운동단체〉의 사무국장으로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데모를 하면 취업을 하지 못한다고, 자유니 혁명이니 먹고사는 일과 하등 관련이 없다며 아들을 꾸짖었다. 그럴 때 저자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른 채 눈먼 채 세상에서 살고 있단 생각에 답답했다. 아버지가 늘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일자무식’이어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불시에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칠 때 아들의 앞을 가로막은 건 아버지 ‘한일순’이었다. 〈민주화운동단체〉 회원들이 재판을 받을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장에서 갓 튀긴 닭튀김을 한 아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아들을 구치소에 빼내기 위해 가게 문을 닫고 변호사를 만나는 건 부지기수였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릴 때마다 아버지는 우두커니 서서 아들을 기다렸다.

사람 몸값이 천만원도 못되던 시절을 산 아버지.
한일순은 지금 화폐 가치로 천만 원이 채 안 되는 돈 때문에 창호지 공장의 동료였던 전규만한테 죽임을 당할 뻔했다. 동료 전규만은 한일순이 차곡차곡 모아 몸에 지니고 있는 돈을 훔치기 위해 낫으로 아버지의 뒤통수를 휘갈겼다. 그때 낫이 빗겨나가지 않았다면 추운 겨울 눈 덮인 산속에서 아버지는 소리소문없이 죽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혹독한 시절을 몸뚱이 하나로 살아낸 아버지 한일순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인생은 “나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지”로 시작한다. 남의 집에서 모내기, 김매기, 꼴베기를 하며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건 그의 나이 열넷이었을 때 일이다.
한국전쟁 때 할아버지가 돌림병으로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와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의 어머니와 동생은 어느 절로 허드렛을 하러 떠났다고 한다. 서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거나 재미를 찾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삼시 세끼 굶지 않고 끼니를 때우는 게 가장 중요했다. 아버지가 처음 머슴살이를 한 곳은 임실이었다. 이때는 추운 겨울에도 무명 저고리 하나만 걸친 채 장작용 소나무를 베러 가야 했다. 어린 소년은 미련할 정도로 성실했지만 1년에 쌀 한 가마를 받는 일꾼이 될 때까지도 제대로 우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아버지는 5년 넘게 머슴으로 일했다. 그렇게 성실하고 묵묵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아버지는 불현듯, 지금 사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전주 경기도 남양주의 월산리로 떠난다. 그의 손에는 달랑 차표 한 장만 있을 뿐 그 흔한 봇짐 하나도 없었다.
그때부터 한일순은 둑 공사, 냉차 장사, 산판일, 품팔이까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런 아버지도 어느새 입대를 해야 했는데, 그때까지도 호적이 없었다고 한다. 군 입대 전까지 아는 글자라고는 이름 석 자와 거주지 주소뿐이었다. 아버지는 호적을 만들고 자신만큼이나 성실한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세상은 아버지를 가만두지 않았다. 부모님이 열심히 운영하던 창호지 공장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벽돌집이 등장하면서 쫄딱 망하고, 서울에서는 다섯 식구가 오랫동안 달동네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 1인당 국민 소득 5백 달러가 안 되는 최빈국이자 1인 독재국가였던 나라에서 아버지처럼 일자무식한 사람은 가장 적은 돈을 가장 힘들게 벌어야만 했다. 돈을 굴리는 일은커녕 돈을 모으는 법도 몰랐다. 이때 아버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70년부터 시작된 중동특수였다. 아버지는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두 차례에 걸쳐 근로자로 다녀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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