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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
  • 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
  • 저자 : 앤 커소이스, 존 도커 출판사 : 작가정신 제작일 : 2013.12.26
  • 소속도서관: 교육청  지원 기기: 스마트폰,태블릿PC 실행 가능  지원 기기: 스마트폰 실행가능  포맷 : EPUB 파일
  • 카테고리 : 가정/생활 유통사 : 다산지엔지
  • 추천수: 2  대출 : 0/10 반납예정일 : 2019.09.01 예약 : 0
  • 북큐브 전자책 스마트폰 이용안내

로도토스의『역사』와 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후 끊임없이 매달려온 질문!
역사는 객관적 사실인가, 상상의 산물인가?
철학에서 과학까지, 지역사에서 지구사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통쾌한 지적 모험이 펼쳐진다!

E. H. 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졌다. 오늘날 앤 커소이스와 존 도커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역사는 허구(fiction)인가? 당신은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이 책의 두 저자는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를 비교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해 역사와 역사연구에 대한 상반된 담론들을 통사적으로 가로지르며 이 질문에 답한다. 역사는 허구의 산물이며 역사가의 해석을 통해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헤로도토스의 계보와 역사는 객관적 사실이자 과학이기에 역사가의 해석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투키디데스의 계보가 그들이 따라간 큰 두 축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스케일은 단지 역사학 안에서 그치지 않는다.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해 철학, 문학, 인류학, 사회학은 물론, 생물학, 천문학, 환경학 등 자연과학까지 아우르며 인류의 기록이 지구사(global history)라는 통합 역사로 나아가는 여정이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역사는 허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관통하며 거의 모든 학문에서 그 근거를 찾아 나아간 이 책은 그 저력만큼이나 생생한 사례들로 가득해 읽는 내내 지적 모험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쎄요, 역사가 허구인가요?
우리는 역사서를 읽으며 자주 질문하곤 한다. '이 역사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을 더 정확하게 정정해야 한다. ‘이 역사서를 쓴 역사가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같은 질문을 던진 역사가가 있었다. 1961년에 초판이 발행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저자인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좇으며 역사적 진실과 해석의 문제를 탐구했다. 오늘날 앤 커소이스와 존 도커의 『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원제 Is History Fiction?)』는 ‘역사는 허구(fiction)인가?’라는 보다 협소한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역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 사이에서 역사가가 취하는 태도에 대해 물음표를 붙이고 역사가들의 역사서술에 대한 거대 조류를 따라간다는 점에서 카와 입장을 같이한다. 그러나 카와 달리 역사서술의 문학적 측면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역사서술의 문학적 측면과 사실적 측면 사이를 줄타기한다. 그러면서 일종의 ‘역사에 대한 역사’를 철학, 문학, 사회학 등 인문학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까지 다양한 학문과 접목시켜 전방위적으로 추적해 나간다.
이 책의 원제인 ‘역사는 허구인가?’라는 질문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역사는 당연히 허구(fiction)가 아닌가요?”라고 생각하는 부류였고, 두 번째는 “무슨 소리! 역사는 역사이고, 허구는 허구입니다!”라고 단언하는 부류였다. 그렇다면 세 번째 부류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 “에……, 글쎄요. 역사가 허구인가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게 묻는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인가, 상상의 산물인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의무는 내가 들은 모든 것을 전하는 것이지만, 들은 그대로 전해야 할 의무는 내게 없다. 이 말은 이 책 전체에 적용할 수 있다.” 역사서란 항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진실하게 기록한 책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우리는 이러한 헤로도토스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도저한 과거의 시간을 지나 현재 역사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사료(史料)가 과연 얼마나 많이 역사가 앞에 남아 있겠는가? 아무리 많은 역사자료가 남아 있을지라도, 연속적으로 흘러간 과거의 시간을 파편적으로 고증해주는 것만으로 과거를 복원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많은 역사가들이 명징한 자료로서 남아 있는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여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연결하고 메우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이 유혹은 과연 유혹일까? 아니면 지향해야 할 역사서술의 방법론일까?
하지만 과연 헤로도토스의 말, 즉 그의 역사서술 태도를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역사가들 가운데에도 헤로도토스적 역사서술 방법에 반발하는 역사가들이 있었다.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서를 집필하는 역사가들은 역사서술에 있어 역사가 개인의 주관과 해석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생각하는 무리였다. 그 선두에 역사가란 과거를 “실제 있었던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선언한 레오폴드 폰 랑케가 있었고, 그 뿌리는 헤로도토스와 동시대의 역사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였다.
어떻게 역사를 써야 하는지, 자신이 쓰고 있는 역사서가 얼마나 진실한지에 대해 역사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일치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두 저자는 그 의견들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 서구 역사서술의 창시자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따라간다. 그들의 위대한 저작,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연구에 있어 끊임없이 논쟁거리를 제공해왔다. 역사연구의 초점은 투키디데스처럼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영역에 맞추어야 하는가? 아니면 헤로도토스처럼 특별한 사건을 넘어 보편적 시간 속에 있는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성적, 그리고 일상적인 영역에 맞추어야 하는가? 저자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우리는 ‘역사에 대한 역사’라는 흥미진진한 모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문명의 붕괴』까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가로지르는 전방위적 역사 이야기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역사’라는 분야에 흥미를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역사가 거의 모든 인문학과 연결되어 있으며, 역사가 지닌 이야기의 힘이 인간을 끌어당기기 때문일 것이다. 두 저자는 페미니즘 속의 역사와 역사 속의 페미니즘을, 남성과 서구와 유럽인 중심의 역사에서 여성과 제3세계와 원주민의 역사로 확장되고 뻗어가게 된 배경을, 포스트모더니즘 및 후기구조주의와의 관계를, 역사가 어떻게 폭력이 되며 반대로 어떻게 폭력을 막아내게 되는지를, 역사가 허구라는 주장이 어떻게 홀로코스트와 결부되고 반박되는지를, 과학, 특히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를 통해 진화와 인류학, 세계사를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밝히는 과정을 통해 역사와 허구, 진실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에 탄탄한 논리적 바탕을 제시한다.
책 속에서 이것들은 단순한 논거를 넘어선다. 예를 들어 랑케의 제자인 액턴 경은 역사가가 최대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즉 독자가 역사책을 읽으면서 역사 스스로 말한다고 평가할 때 역사의 가치가 있다고 한 반면, 허버트 버터필드는 역사가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역사란 “건조한 문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이야기이며, 역사의 의미는 기하학 개념에 의해 전달될 수 없다”고 반격한다. 6장에서 다루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노선은 다르지만 이후 등장한 푸코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역사가들에게 전체사(whole history)라는 역사서술의 신천지를 제공했으나 마르크스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된 역사가들은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게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히로시마 원폭투하와 난징대학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학살 같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역사 왜곡과 역사관의 관계를 진단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일본의 난징대학살 은폐 시도를 용기 있게 고발한 역사가 아이리스 장이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자 난징에서는 “택시기사부터 구멍가게 주인까지 도시 전체가 그 ‘젊은 역사가’를 그토록 가슴 아픈 결말로 내몬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는 대목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가는 역사 속의 시간이라는 문제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정원사의 삽에 흙이 달라붙어 있듯이 역사가의 사고에는 시간이 꼭 달라붙어 있다.”고 말했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탐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전망을 제시해야 하는 역사가들에게 상상력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무기이자 가장 무서운 함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다양한 주의(主義)와 관점, 이론의 급류를 타며 지적 여행의 쾌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역사는 허구일까? 아니면 진실일까?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넘어서는 지적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역사가를 비롯한 많은 학자와 연구가들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마치 논쟁의 현장 속에 있는 듯한 생생한 간접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역사, 인류사와 환경사를 넘어 지구사(global history)로 진화하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는 '과거의 기록 '이 매우 중요했다. 어느 왕조에서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과 편찬하는 사람이 있었다. 역사 과목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없었고, 역사를 배우지 않고 졸업할 수 있는 학생 역시 없었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역사가가 투키디데스보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서술 방법을 배워야 하는 까닭이 분명해진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즉 과거 속에서 미래를 읽기 위해서는 역사가가 단순히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편집해 옮기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가는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과거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역사의 행간을 채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바로 헤로도토스처럼 말이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1인극이라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다성(多聲)의 역사이다. 헤로도토스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와 설명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독자는 능동적으로 이야기 속에 들어갈 수 있으며, 다양한 이야기와 해석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헤로도토스의 방법론은 인류를 위한 역사를 가능하게 한다. 중심과 변방, 내국인과 이방인, 남성과 여성, 지배층과 피지배층, 더 나아가 인류 이외의 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배제와 소외, 폭력이 없는 역사서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인류사, 환경사, 세계사(world history)를 넘어서, 빅뱅 및 우주와 지구의 탄생, 인류의 출현에서 진화와 문명 발달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사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천문학, 지리학 및 고고학, 환경학, 인구학 등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가로지르며 통합적 지구사(global history)를 태어나게 했다. 이는 인류의 역사와 자연사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것이야 말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구슬이 아니겠는가.
주요내용
기원전 5세기 전에 쓰인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21세기인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저자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잇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역사란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허구인가? 헤로도토스의『역사』는 이야기 형식, 즉 픽션의 형식을 빌어 쓴 주관적 관점의 역사책이다. 반면 같은 시대에 쓰인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사실만을 기록하려 한 역사서이다. 저자는 인류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의 계보를 따라가면서 그들의 역사 서술에 대한 허와 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헤로도토스의 계보를 잇는 역사가들의 관점과 투키디데스의 계보를 이어가는 역사가들의 관점을 교차 비교하면서,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구조주의 등 전방위적인 인문학적 이론과 연결하여 역사가들의 역사 기록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구체적인 실화를 토대로 흥미진진하게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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